“우리들은 다 살아생전 불효자식들 아닙니까?.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자식 흉내 낸다고 제사밥이라도 정성드레 올리지요“

얼마전 인사를 드리러 갔던 사숙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삭발염의한 스님인지라,

마음 편히 모시지 못한 처지를, 돌아가시고 나서야

온 절의 신도들이 정성드레 재를 올리는 모양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셨지요.

출가함과 동시에 ‘어머니’라는 존재는 마치 문갑 같아집니다.

가장 소중한 곳에 있었던 것이 차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마음 한 켠 또는 마음 구석진 곳에 켜켜히 앉아있는 문갑이 되지요.

내 방에 문갑이 있어요

어머니가 쓰시던 문갑이지요

뎅그러히..외롭게 혼자 있어요

당신이 먼저 쓰일 데가 없다 하셔서

저도 모르게 먼지가 이렇게 앉았네요

문갑이 쓰여지지 않아도

내가 문갑을 자주 쓰면 될 것인데..참 무심했네요.

저 묵은 세월의 나무결..참 무거웠겠네요

꼼짝도 할 수 없을만큼 무거웠겠네요.

누가 힘써 들어내어 주지 않는다면

한평생 저 구석방에 오래된 문갑처럼

울지도 못하고서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서

혼자 펄펄 박달나무의 나무결처럼 열병을 앓다

돌이킬 수도 없는 어느 세월에 팔려

이젠 살아서조차 전설의 책갈피 속에

잠드시려는 당신의 일기 속에 저의 편지 적어봅니다.

동산양개화상 사친서. 삼가 짧은 글을 갖춰 애뜻한 정 하직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자주 생각 하지 말고, 처음부터 이 몸이 없었다고 여기소서.

세상명예 이익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애증을 영원히 떠납니다.

조사의 뜻 가르침을 언하에 깨우치고.....

내 방에 문갑이 있어요

서랍을 열면 향기가 나고

서랍을 열면 울음소리가 들리는..

혹 당신이 그 속에 없다고 하여도

네게는 항상 당신이 있는 문갑이 있어요.

엎드려 바라옵건대, 부모님께서는 마음으로 들으시고 기꺼이 저를 버리소서.

뜻으로 애닮다 하지 마옵시고 정반왕(淨飯王)을 배우고 마야성후(摩耶聖后)를

본받으소서.

훗날 부처님 회상에서 서로 만나기를 기약하고 오늘은 우선 서로 이별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