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거리며 꽃잎지는 나무 아래 앉아 있을 것이다.

딸이 사주었을까? 보살님의 털모자에는 보푸라기가 가득했다. 그 보푸라기가 이마에까지 피어오른듯 가는 주름살 아래 해맑게 웃고 계신다. 참 따뜻하다는 생각..늙은 어머니가 쓰신 보푸라기 털모자...새순같은 봄이다.

바라밀직업학교에 온 학생의 손을 잡았다. 무척 차다. 나의 손은 너무도 따뜻하다. 부드럽게 말했다. “너 왜이리 손이 차니”물끄러미 대답이 없다. 차가운 손과 따뜻한 손. 차가운 바람과 정오의 햇살. 마을 슈퍼 앞에 피어놓은 드럼통의 장작불...사람들이 막 손을 갖다댄다. 자꾸 가까이 가보고 싶은 봄. 따뜻하게 손잡아 주고 싶은 봄

언제나 실패했다. 꽃봉우리가 터지는 순간을 볼려고 기다려도 기약이 없었다. 어김없이 눈뜨고 일어나면 보란듯이 터져버린 저 꽃들. 달걀같지 않을까..봉우리가 터지면 어떤 소리가 날까? 살금살금 걸어가면 어김없이 와! 날아가버리는 새떼들...아.!..어!..와!...봄이네

‘스님 예. 그 스님께 매실엑기스도 갖다드리고 했던 그 보살님 말입니더...한동안 소식이 없더만 병실에 있었다네예. 뇌졸증이 와가꼬 이제야 의식을 회복했다네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람사는 일이 다 그렇다. 눈 앞에 있을때면 필요한 것이되고, 원망할 것이 되고. 미워할 것이 되고, 뜨겁게 사랑할 것도 되지만..당장 눈 앞에 없으면 까맣게 까맣게 잊어버린다. ‘스님 꽃대가 올라왔어요’어느날 부터 꽃을 보면 슬프지기 시작했다. 어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이 세상에서 말야..보살님을 보러 가야겠다. 다시 눈을 뜨셨다니까 말이다 봄처럼 꽃처럼 다시 피었잖아!

웃을 때 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젖힌다. 터지기 직전 꽃봉우리가 그렇다. 목젖이 보이기도 한다. 반개한 매화를 따면 그 속에 목젖 같은 실오라기처럼 가는 미소가 있다. 너무도 가늘어서 코속으로 막 들어온다. 하....!

원래 부터 말이 없다. 겨울바람이 한 잎의 걸친 낙엽마저도 싸그리 가져가버려도 한 마디 말도 없었던 저 나무. 언제부터인가 그 가지에서 소리가 난다. 봄이 가까우면 한두마리씩 새들이 앉아 지줘귄다. ‘어머..이 잎 좀봐. 신상이야..에그머니..이 연두색 치마라니..어디서 샀대’좀 엄마같고 아줌마 같은 봄이 나무 위에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때 나는 말없이 바라본다. 말없는 나무의 지저귀는 새들...나무의 침묵이 더 성스러워진다. 또 번거롭고 시끄러움이 고마워진다. 다시 시작이니까...

겨울 옷은 너무 두껍고 무겁다. 빨래줄에 무슨 고문을 당하듯 매달려 있던 겨울옷들. “니 와 그리 사노..마 훌훌 털어뿌라”말했던가? 그러면 어김없이 겨울옷을 말했다 “훌훌!..그게 안돼! 그게 진짜 되기는 되는 기가?” 봄이면 팡팡! 털어버릴 수 있다. 봄이면 팔랑 팔랑 위태로운 한 줄의 외줄타기 같은 빨래줄 위에서도 뛰어다닐 수 있다. 얼마나 잘 뛰어다녔으면...와!...바람부는 날 올라가 보라니까? 도망갈듯 하늘로 날아가는 빨래들을 집게들이 온 힘을 다해 악물고 버티고 있는지? 이...히히히 그런 팔랑거리는 봄 옷을 입으니..나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봄이면...놀러가야지”

할아버지가 막 걸음마를 뗀 손주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 좋겠다. “에구 내 새끼..잘도 걷는다” 아기는 넘어질새라 앞만 보고 비틀 비틀 걷고 할아버지는 굽어보며 손을 뻗는다. 겨우 삼년 정도 살아온 삶이 80년의 인생을 끌고 간다. 할아버지는 오히려 그것이 너무도 좋아..자세히 보면 다시 태어난듯..세살박이 친구가 된듯....봄이면 무언가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꽃들이 80의 고목나무에서 거꾸로 새살로 돋아나고 새생명이 돋는다. 그게 좋다. 아름답다. 고목에서 핀 꽃. 할아버지가 손주의 손을 잡고 걸어나온다.

음..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봄날..난 보푸라기 가득한 털모자를 쓰고 누군가의 차가운 손을 잡고..까맣게 잊어버린 그를 찾아 갈 것이다. ‘다 잊어버려’ 툭툭 어깨를 치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을 때까지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놀러 다닐것이다. 철들지 않은 세살박이 처럼..넘어지고 다시 기대하고 다시 희망하며 다시 사랑할 것이다. 절망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이..히..히히 웃으며 햇살 좋은 날..슈퍼앞 평상에 앉아 수다를 떨며 깔깔거리며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 아래 앉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