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느끼다.

학기중에 진행되는 대부분의 성지순례는 함께 할 수 없기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 월호스님을 지도법사로 하는 돈황 불교성지순례는 공교롭게 시간여유가 있어 참가하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덜컥 신청을 해놓고 출발이 가까워져서야 일정을 보니 이건 보통 일정이 아니었다. 힘들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마음의 각오를 하고 출발해야 했다.

공항에서 만난 21명의 참가자들은 각자의 삶을 4박 5일의 돈황성지순례를 향해 난주로 날아갔다.

2일째 아침, 이슬비가 곱게 내려 길이 촉촉했다. 난주에서 무위로 이동하면서 아침예불과 스님의 법문을 마칠 때까지 비가 내렸다. 비가 드물어 불모지가 많은 이곳에 귀인이 오면 비와 바람이 분다는 가이드의 멘트가 있었다(貴人來 總風總雨). 한나라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마답비연상(馬踏飛燕像)은 날아가는 제비를 밟아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의 말의 모습이었다. 육중한 말이 날아가는 제비를 밟았다니... 그네들의 경쾌한 상상력에 마음이 가벼워져 함께 웃는다.

구마라습사는 구마라습스님이 머물며 산스크리스트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역경과 강설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구마라습사에 머물고 있는 주지스님의 안내로 구마라습스님의 혀 사리탑을 참배하고 반야심경 독송 후 탑돌이를 하며 마음은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구마라습스님이 번역한 경전을 보관해 놓은 가흥장(嘉興藏)을 열어 주셔서 600부 중 제 5권을 직접 만지고 책장을 넘겨보았다. 참배 후 차담을 준비해주셔서 한국의 배와는 모양새가 다른 밝은 연두색의 길쭉한 중국배와 녹차를 맛있게 먹었다.

장액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구마라습스님의 일생과 혀 사리탑에 관한 스님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구마라습스님을 모시고자 전쟁까지 일으켰다니... 당시 최고의 인재는 불경을 정확하게 번역하여 전법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국땅에서 생을 마무리한 구마라습스님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사막에 계속 비가 내린다.

칠채산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폭우에 우박까지 내렸다. 연 강수량 30ml로 비가 없어서 생명이 없는 이곳에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가이드가 10년 동안 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비가 내리는 것은 처음이라며 무척 놀라워했다. 월호스님께서 한 달에 한 번씩만 오시면 사막이 대초원으로 바뀌겠다니 자주 오셔야겠다 한다. ㅎㅎㅎ

칠채산은 뭐라고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라 언어를 포기하고 그저 장면에 감탄하며 시선을 더 멀리 던지고 호흡을 한다.

3일째는 잠자리가 바뀌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습성으로 오전 프로그램은 그냥 따라다녀서 기억이 없다. 점심먹고 오후에는 명사산 월아천으로 향했다. 일몰전의 햇살은 모래언덕을 비스듬히 눕혀 선명한 라인을 드러내주었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관세음보살 옷자락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월아천이 있었다. 모래언덕과 하늘의 색깔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스님을 선두로 하여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는 뒷모습은 마치 먼 옛날 구법의 길을 떠나는 듯 엄숙했다. 높은 모래언덕에 오르자 와~~ 일몰이었다. 잠시 앉아 시간이 보여주는 선물을 감상하였다. 스님따라 다니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얼른 가서 활쏘기도 해야했고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낙타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상인들이 물건을 다 팔고 불빛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ㅎㅎㅎ

4일째는 한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었다는 양관이었다. 이곳에 친구를 보내면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며 술을 한 잔 더 권했다는 시가 유명하다고 가이드가 안내를 한다. 과연 그럴 것 같았다. 거리를 예측하지는 못하겠으나 설산이 멀리 보였고 樓에 올라보니 봉화를 올려서 소식을 전했다는 봉수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180도에서 살짝 들어올린 각도로 하늘을 볼 수 있어 웅장함이 더했다. 이곳에 오르면 바람이 대장부 가슴을 서늘하게 하겠구나.

서천불동은 원래 막고굴보다 더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로 옆 계곡으로 물이 흘러서 보존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어 그 위에 진흙을 발라 채색하였다.

측천무후 통치시 막대한 불사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굴 입구에 여의원년(如意元年)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여의원년이라... .옆에 계신 보살님 말씀이 ‘베짱도 두둑하지...연호를 여의라니...’

문득!! 부러웠다. 한 생각이 올라온다. ‘한국에 태어나서 불법 만났으니 언젠가는 대세지로 원아광도중생하여지이다.’ 무명의 바람인가 번뇌의 물결인가?

막고굴에는 사람이 많이 모였다. 줄을 3줄씩 서서 확인받고 기다려야 막고굴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10년 전 대만박물관에 갔을 때는 사람이 없고 한가해서 하루를 꼬박 쉬엄쉬엄 보았는데, 작년에 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이러다가 계단이 무너지겠다 싶은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났다. 다행히 여기는 하루 관람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부터 막고굴의 전체모습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던 이를 만나러 가는 듯 가볍게 설레었다. 8개의 굴을 보았다. 아쉬웠다. 750개가 넘는 굴이 보존되어있고 그 중에 400여개의 굴을 관람할 수 있다는데.... 표현할 수가 없다. 단지 2000년을 훌쩍 넘어 아직도 살아 타오르고 있는 불꽃을 보았다.

저녁을 먹고 왔던 길을 되돌려 돈황에서 난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돈황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침식사로 난주의 별미인 우육라면을 먹었다. 와~ 아침부터 후추가 들어가 얼얼한 라면을 두 그릇씩 먹나보다. 아침인데도 식당은 마치 한국의 유명한 맛집 점심이나 저녁식사 풍경이었다. 함께 오신 선문스님이 제공하신 복숭아가 속을 달래주었다.

기술과 일체재료가 모두 독일산으로 제작되었다는 중산철교가 붉은 강을 건네주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 정서를 통합.중화하고자 하는 황하모친상, 감숙성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21명의 참가자들은 각자가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약식 예불과 스님 법문으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스님과 함께 오신 분들의 잦은 간식제공으로 먹거리가 풍부한 여행이었다. 30대 최연소 1명에서부터 70대 보살님과 거사님들이 여러분 계셨다. 그렇지만 성지순례기간 내내 모두가 스승이고 청춘이었다. 룸메이트 보살님은 조용히 할 거 야무지게 다하시는 모습이 귀여우셨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